허리수술덕에 요즘 왕비노릇을 하지만 이렇게 하는것이 왕비마마는 아니지 싶다.
아~ 아~ 요즘은 한국에 갈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하하!
가면 앉아서 얻어먹을수도 있는디 해감서리.
그러나!
다 바쁜세상에 그럴수 있나 그래도 내집이 최고지.
위로해본다나.
일요일에는 교우형님이 차가 없으셔서 걸어서 오셔 보겠다는 소식이
있어 누워있는데 두런두런대는 소리에 오셨나 하는데
들어온것은 묵은 친구다.
아니 아예 잊으려 하던 동생뻘인 교우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91년에 이어진 우정이라고 하네.
그때 두살이던 딸아이가 어느덧 처녀가 되고 9살이던 아들은 한국
유수기업에 스커웃트되여가 금년에 결혼도 했다.
남편이 외항선을 타기에 늘 심심하던 세식구는 어느땐 아 ~안왔으면.
하는 마음이 늘 정도로 들락날락하며 정말 가족인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어찌 흉이나 섭섭한것이 없었겠는가?
허지만 그렇게 하루아침에 발을 딱 꾾었을때는 섭섭한것보다
배신감이 들었었지.
나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집귀신이다.
일을 하고 집안일 해야하고 손님은 또 얼마나 들락거렸나.
그 뒷바라지로 나다닐 여유가 없으니 찾아오는 손님이 더 많았던 시절
그녀는 나와 손발이 잘 맞아 일도 잘해냈다.
그 많은 김치를 담으면 자그마하고 통통한 몸과 손으로 일을 얼마나 잘 하던지...
우린 환상의 한쌍이여서 정말 잘 지냈엇는데.....
영어를 못 알아들어 눈이라도 와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전해주는등
나름 도움을 주려 애를 쓰기도 했던 사이였는데.....
일을 해야하기에 스시집에서 스시를 싸는 일도 서서하니 발도 붓고 손목도
아프다하여 주류사회에서 일을 해야 영어도 할수있을텐데 하는 마음에
동료의 친척이 차 공장을 한다기에 소개를 하여 다니게도 해주고
남편도 가족처럼 다니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전기일을 하는 조선소에
일을 할수있게 되여 친정에서 도움을 주기도 했으나 집도 하나
장만하고도 미사를 끝내고 들리면 비빔국수나 김치찌개로
하하 호호하며 들르더니 어느날인가 발길을 뚝 끊는것이 아닌가.
아~ 그때의 난감함과 배신감 섭섭함과 함께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하며 반성도 하기도 한것은 누구에게보다 며늘아이에게 면목이
안서는것이 데이트 할때 한번씩 한국에서 오면 늘 그 가족도 함께 였기에
이렇듯 꾾는 사이에 내가 어떻게 보일것인가에 더 마음이 쓰여
한동안은 그일로 마음이 참 아프기도 한데 그녀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성당에서 만나면 형님형님 한다.
참 난감함이란!
그렇게 마음을 서서히 달래가며 그래 네가 무언인가 내게서 멀어져가야할
어떤 이유를 내가 했다면 어쩔수가 없지 않겠나 하며 묻지도 않고
지내오며 그래도 아들아이가 결혼을 한다기에 카드로 주곤 하면서도
편치않은 마음이였는데 불쑥 들어선것이다.
하~참~
그때도 마음이 착잡했다.
지난주에 아들아이에게 소식을 들었다며 온것이라는데 그녀 역시 몸이
많이 아픈것을 아는데 내가 누워 있으니 저도 바닥에 앉으며
제대로 앉지도 못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신경통이라는데 그 예쁘고 통통한 손이 부기로 부어있어 만져보니
열도 있다.
그래 내가 왜 미련한 생각을 했나?
이렇게 아픈 네가 나를 찾아올 마음이 있엇는데 나는 옹졸한 마음이였구나
해지는 마음으로 싸르르 해진다.
쬐꼬만 몸으로 손은 커 포도도 큰상자로 들고 왔다.
장을 보러 갈때도 무거운것을 못 들어 아이들이나 남편 아니면 나이드신
부모님과 다닌다는데 이 무거운것을 어찌 들고 왔는지.....
그동안 섭섭하고 배신감으로 마음 한켠이 늘 무거웠던 마음이 이리
간사하게 측은지심과 고마움으로 다 풀어진다.
형님과 아저씨의 도움으로 우리 이만큼 살게되고 아이들도 잘 자라
내노라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제가끔 살길을 살아주니 고맙다하며
형님이나 저나 삶의 순응하며 성실히 살아 노년이 그래도
이만하게 살게 되여 기쁘다 하기도 하니
마음이 눈녹듯이 녹아내린다.
돌아가는길에 계단을 더듬더듬 걸어내려가던 그 모습이 애처로워
눈에 밟힌다.
영감도 마음이 안됐는지 몇번이나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는 말을 한다.
그래 우린 묵은 친구다.
즐거움과 섭섭함 많은것을 묻어두었던 묵은 친구의 방문으로
난 지금 개운한 마음과 애처로운 마음으로
편한 마음이다.
이제는 지나 나나 나이가 들어 음식을 하여 오라가라 할수는 없지만
가끔 만나 맛난것이라도 나누며 지난날을 회상하며 나누리라.
어떻게 도와주어야 조금은 편한 몸이 될까하는 마음이 든다.
묵은 친구는 이래서 좋다.
어려운 시기를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도우려 했던 친구이기에
가끔 묵은 친구들을 만나면 아주 반갑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했다.
아직도 알수없는 나의 허물이 있었겠지만 네 마음에서도 많이
가벼워졌으니 와 주었겠지.
그래 그렇게 네마음에도 내마음에도 묻어두고 그저 우리
잘 지내던 시절만 기억하고 어려운일이 있으면 나누어
함께 노년을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