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국민학교동창이며 한동네에서 살았었다는 친구가 지난주 금요일 온다는
소식을 목요일 13시간을 일을 하고 들어오니 전해준다.
월말이여서 빠져나올수가 없는 상황이니 모시고 나가 저녁을 들면 하룻밤은 집에서
보내시게 될것이리라 마음을 먹고 집안이 지난주 구역모임이 있어 청소와 정리는
대강 돼있으니 다행이다. 휴우! 손님이 오신다 하면 늘 걱정이 집안이 어지러져있어
부담이 된다. 두사람만 사는데 뭐 치울게 많냐고 하지만 손님맞이의 예의는
차려야 하지 않느냐느게 나의 생각이다.( 사실은 부끄러워서이면서.... ㅎㅎ)
그날도 13시간을 마치고 전화를 하니 저녁을 먹는 중이라며 한식당으로 오라기에
가니 한이웃에서 살았다는 형님뻘인 아저씨부부도 함께 반갑게 맞아주시는데
동창이란분은 머리가 하얗고 부인도 나보다 나이가더 들어보이며 나보고 젊다고 평소에도
나의 피부를 부러워 하는 아주머니는 한국을 다니며 피부관리를 했느냐며 호들갑이시다.
그 아까운 비행기값과 시간을 가지고 간 한국에서 난 파마하는 시간도 아까워 안 하고 오건만.
식사를 마치고 남편은 집에가 노래방을 하자 하여 들어서자마자 노래를 틀어 놓으나 정작
손님인 두분은 노래를 모른다며 마이크도 안 잡는것이 아닌가.
아저씨는 나에게 신이 나게 놀아보자 하는데 사실 나도 그렇게 노는데는 자신이 없지만
아저씨와 함께 즐기는 의미에서 마이크를 잡고 엉터리이지만 불러 제켰다.
남편은 맥주를 안기고 그래야 흥이 난다나 ! 두병을 마시고 나니 막 망가진다. ㅎㅎㅎ
그제서야 동창인 남자분이 슬금슬금 노래제목을 찾아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하는데
잘 부르시는데 힘은 없었다.
앉아서 손뼉만 치고 있던 부인에게 한곡 하세요 하니 노래를 모른다 하시기에 그럼 동요라도
부르세요 저도 노래를 못 불러 동요를 불러요 하니 이야기 하신다.
장사를 할때 아침에 일어나 가요나 노래를 흥얼거린날은 장사가 안되고 찬송가를 흥얼거린날은
장사가 되는것을 알았기에 노래와 담을 쌓고 안 부르다보니 아는것이 없다고.
그런데 저이가 저리 끼가 있는둣 하는것을 보니 내일 당장 노래기계를 하나 사 집에서
부르게 해야겠다고 하시는것이 사람 사는것이 다 이리 사연이 있다.
그때부터 나는 옛날 노래를 찍어 그분에게 마이크를 드리면 생각은 나는데 나오지가 않는다 하신다.
형님아저씨께서 돌아가시고 그때부터 옛이야기부터 살아온 이야기들을 그리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아주 친했던 사이처럼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 나이에 일류대학을 나오신 분과 공무원생활을 5년여를 결혼전에 하셨다하니 고등학교는
나오신 두분이 만나 결혼을 하신 사연과 돈이 없어 신혼여행을 남해선, 전라선등 완행열차를
타고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만나 들은 사연들은 살아가면서 아주 좋은 본이 되엿다는 두분은
말씀도 이 대목에서 바톤을 서로 넘기며 아주 재미있게 하신다.
부인이 결혼도 하기전에 너무 아파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매달려 안수치료로 건강을 찾으신 후론
믿음생활로 사신다는 이야기에 반론을 잘 하는 남편도 의의를 달지도 못했다.
매사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생각하며 사신다는 두분을 굴곡은 있었어도 잘 나가던 사업을
툭! 털고 중1, 5학년이 되는 남매를 데리고 카나다로 투자이민을 오신거란다.
오셔서 하신 사업으로 아주머니의 손가락이 잘릴뻔한 일도 있었지만 그 역시 하느님이
주신 은총으로 받아들이며 그 사업 역시 잘되여 예금도 좀 하시어 이제는 일을 안 하시고
5년째 노시는데 남편과 몇년전에 통화를 한적이 있는데도 연락이 없다 하더니 이제는
외로우신지 이리 나서신것인데 참 편안하였다.
남매도 성실히 잘 자라 다 출가시켜 손주도 셋이나 되며 10년전에 사 놓은 집은 7배나 뛰여
노후도 탄탄하시다 한다.
자신은 능력이 없어 와이프등에 업혀 여기까지 왔노라 하시며 그렇게 사시느라 부인의 건강이
여러가지로 나빠 건강관리를 해주느라 음식에 관해서도 아시는게 많았다.
아침을 해 드릴것이 걱정이 되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거한 식사를 하시는 분들이 아니다싶어
마침 해 놓았던 쑥개떡을 몇개 내놓고 우유와 드리고 밥은 우거지국이 있으니 그리 간단하게
드리리라 마음을 먹고 3시경에 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또 시작된 대화와 남편의 국민학교
동창들이 가졌던 TV 비디오를 보며 회상을 해가며 든 아침은 쑥개떡과 우유, 엷은 커피.
그것으로 아주 흡족하시다 하나 우리 부부는 먹어야 하니 남편보고 라면이나 꿇이라 하여
먹고는 어디든 나가자 하니 이제 발을 떼여 자주 올테니 오늘은 바닷가가 가고 싶다 하신다.
난 손님이 오면 함께 앉아 즐기는 편이기에 그때까지 있었던 밥상을 그 분은 들어서 윗층 부엌에
내려 주시는 배려도 해 주시기에 그대로 놓고 나선 나들이.
가까운 바닷가에 가 여자들은 뗏목에 앉아 남자들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난 배가 고프면 견딜수가 없어 점심이나 먹자하니 자기네가 산다 하기에
그러세요. 편한데로 살자구요. 어디로? 한식은 매웁고 짜고. 그럼 햄버거 먹으러 가요.
햄버거는 드신다 하기에 간 레스토랑. 이크! 어제 일찍 도착하여 점심을 여기서 햄버거를 드셨다나.
무엇을 하나 사 가지고 들어오려고 일찍 오셔서 샤핑을 다니다 눈에 보여 들어가 드셨노라 하시며
어떤게 좋은지 몰라 돌아다니다 아무것도 못 들고 왔다기에 잘 하셨다 하며 내가 댁에 갈때도
안 들고 가도 되고 이제는 하나씩 내어 놓아야하니 편한것이 좋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집에와 밤을 구워 가시며 드시라고 싸 드려 오후 6시에 떠나고 즉시 난
아들에게 전화를 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오너라 하니 엄마 쉬세요 하지만 고넘들의 에너지를
받아야 일주일을 넘기지. 데려와 저녁먹자 하여 아들네와 우린 돼지고기를 로스구이로 걸쭉하게
먹는데 3시간 반이 지나 전화가 와 도착했다며 너무 편안하게 대해주어 고마웠노라며 거듭 내게
전해주라 하시더라나. 어제는 형님뻘 아저씨도 전화를 하셔서 내게 고맙다라고 하더란다.
참 해 드린것도 없는데 이리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미안하다.
나도 24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많은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부담없이 즐기다
떠난 그 분들과의 만남이 정말 편안하였다.
아침을 제데로 해 드리지도 못한 대접이였지만 어쩌면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내어놓은
진솔함에서 존중을 하는 마음이 아니였었던가 하는 마음과 아울러 혹시 서운하시지는
않았을까하는 우려도 있지만 그 분들이 하신 말씀이 그저 인사치레가 아닐것이란 믿음을
난 가지고 있다.
얼굴을 알아보았느냐 물으니 어릴때 모습들이 있다고 하며 남편은 그분이 연구원이나
교수가 돼 있지 않았을까 했는데 전혀 딴 길로 살아오셨다는것이 예상밖이라 한다.
난 새삼 남편이 부러웠다. 먼 훗날에도 찾아주는 친구가 있다는것이.
그래서 두 사람의 우정을 이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