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오래 묵은 묵은지 같은 친구가 있다.
우린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서로에 신상에 대하여
아주 깊이 알지 못할수도 있는 사이다.
나보다 서너살 아래이지만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고
난 xx엄마라고 부르는 사이.
어느덧 햇수로 36년지기이다
어제 그녀를 만나러 가며 전화하니 목소리가 가라앉아
가슴이 철렁하지만 천연스럽게 묻었지.
어디야?
나 지금 누워 있었어요.
나 회사 나왔다가 들르려고. 갈께.
우린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
간다고 하면 늘 따뜻한 밥을 준비하는 그녀가
찻상에 녹차 한잔을 이미 준비해놓고
들어서자마자 앞에 놓는다.
많이 피곤한가보다.
그녀가 요즘 안 좋다.
의사가 원인이 뭐래?
그것 알아 무엇할려고!
하며 웃는다.
나 역시 그려 그럼 말하지 않아도 돼.
하는 사이.
그래도 그녀도 나도 우리가 무엇을 걱정 하는지 알지.
우린 어느때는 일년에 한번도 얼굴을 안 볼때도 있지만 가끔
아주 가끔 전화를 하여 서로의 이야기로 깔깔,그래그래,
안됐다,그렇게 살아야지,그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등등의
말로 동감을 하는 사이.
거의 같은 시기에 와 아이들도 어릴때의 기억으로
추억이 있는 사이.
훌쩍 자라 어른이 돼여 만나지는 못해도 누구 하면
그리워 하는 사이다.
작고 야무지고 어느면에선 엄청 독하고 쌀쌀하고 너무 경우가 밝아
냉정한듯 그녀는 정말 독하게 일을 해왔다.
지금 그녀는 나와는 엄청남 차이의 경제력으로 일손을
놓은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한다.
얼마나 알뜰한지 한번씩 놀러가는 그녀의 집에
늘 빨래가 널려있었다.
설것이 할때도 물을 약하게 틀어놓고 씻고는 한다.
그런 그녀가 누군가에게 부조를 하거나 도와주면 쾌척을 한다.
큰아이 결혼을 2000년에 하는데 시상에 거금 $1000.
우린 다 놀랬다.
큰아버지들도 $200인데.....
수정에미 결혼식에도 그녀는 그렇게.
내가 한국을 가면 늘 봉투를 주는데 엄마 맛있는것
사 드리라고 $200~300 이다.
그래 우리친정에서도 아주 좋아하는 친구.
그전엔 그랬다.
나는 자네 아이들 결혼식에 그렇게 다 줄수는 없어.
반정도는 해야지 생각하였는데 이제는 나도
그렇게 할수는 있을것 같은것은 아이들이
독립을 해 사니 나도 그렇게 할수있다는 생각인데
딸만 둘인데 아직 결혼들을 안하네.
난 그녀를 보면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생각이 든다.
큰아이 겨우 돐무렵 만나 연연생으로 작은 아이를 낳았을때
우린 이민초년생들이여 어려웠는데
그때 그녀가 그랬었지.
난 우리 아이들 사립학교 보내겠다고.
그러더니 정말 그랬다.
두아이 유치원부터 사립으로 보내며 억척스러운 엄마
일해가며 두아이를 대학원까지 보내 지금 두아이도
쟁쟁한 자리에 있게 만들더라.
그때 나는 왜 사립에 대해 반감이 있었는지.....
바보,
그러는 동안 우리는 서로 살기바빠 아주 가끔 소식이나 전하며
지내오면서도 우린 마음이 통했다.
영감이 인정하는 친구.
쌀쌀하지만 진국인 친구라고.
그 친구가 아프다.
그래도 밝다.
늘 깔깔거린다.
나는 그녀의 웃음이 좋아 유모어를 보거나 듣으면
전해 주면서 나도 함께 통쾌하게 웃는다.
오죽하면 내동생도 유모어를 그녀에게 전해주라고 할정도일까.
그런 그녀가 머리에 이상이 있단다.
고기와 빵을 좋아하던 그녀가 콜레스톨이 높다고 채식과
운동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던 그녀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
어느땐 어지러워 하루종일 누어있기도 한단다.
누구에게 하나를 받으면 두개를 주어야하는 성격으로
예전엔 친구도 없더니 그래도 까칠하면서도
후덕함으로 요즘은 나 아니여도 친구가 많아
성격도 많이 바뀌여 고맙다.
늘 방방뛰며 사느라 우리집에 와도 한시간을 앉아있지
못하는 그녀가 일요일 교회 다녀오는길에
들른다더니 안 오더니 전화가 왔다.
어디?
지금 집에 왔어요. 누가 와 있는것 같아 문앞에
더덕봉지 놓고 왔으니 들여가라고.
이렇다니까.
수정에미였는데....
들어와 아이들 보고가지.
뭐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 녀 다운거지 뭐.
도토리묵 쑨것과 깍두기 깻잎볶은것과 쑥 인절미 얼린것을
재활용에 들어가야하는 봉투에 넣어가며
그녀라면 이것 이해 할거야 하며
물건들을 내 놓으며 우리라서 이렇게 가져온것 이해하지?
하니 또 깔깔거린다.
그런 그녀가 감을 깍는다.
깍는 모습이 어쩜 나와 같은지.
정말 얇게 깍아 먹으라고 내민다.
점심도시락에 넣어주려고 지난번 그녀가 사다준 감을 깍으며
너무도 닮은 그녀와 나를 생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나 은퇴하면 터키 가려고 하는데 갈래?
성큼, 그래 가.
그녀가 달라졌다.
은퇴하면 한국에 배낭 여행 가자고 하는 그녀.
그 이야기를 하니 울 영감왈.
6개월도 좋으니 가라고.
이런저런 이야기중 요즘 아이들은 쓸것 다 쓴다는 이야기
내가 그랬지.
사고 싶은것 안 샀다고 그 돈 모인것은 아니잖아.
그녀가 그런다.
그래도 그렇게 살았으니 지금이 있지 않느냐고.
우린 또 동감한다,
예전엔 남편이 먼저 갈수도 있다는 생각이였는데
요즘은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그녀.
지금처럼 강하게 이겨냈으면 좋겠다.
지난번 두딸과 남미여행을 간다기에 맛난것 사먹으라고
카드와 약간을 넣었는데 그만 못 만나 전해지지않아
나중에 주니 난리가 아니다.
결국은 내차에 던지며 나중에 밥이나 한번 먹자고.
어제,
수정에미가 심포니공연 예약 했으니 12월 21일 시간 비워놔,
그리고 멋있는 드레스도 준비하고.
분위기 있는곳에 가 맛난거도 먹을거라고.
수정에미가 함께 한다고.
예전 같으면 아이들한테 신경쓰게 한다고
난리일텐데 큭큭 웃어준다.
얼마나 고마운지.
생활관이 변해가는 모습이 좋으면서도 쨘한 마음,
그래도 난 참 행복하다.
이런 찐한 친구가 있어서.
친구야 사랑한다 그리고 건강하자 응.
감을 깍으며 자네 생각이 나서.